여행뉴스태국에서 떠나는 사람들, 그들이 남긴 조용한 목소리

태국에서 떠나는 사람들, 그들이 남긴 조용한 목소리

작성자 이동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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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에서 15년을 살아온 한 외국인이 최근 조용히 짐을 쌌다는 이야기가 전해졌다. 현지에서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키우며 일상을 살아온 그였지만, 결국 “더는 머물 수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그는 특별한 문제를 일으킨 것도, 갑작스럽게 환경이 바뀐 것도 아니었다. 단지, 삶을 지속할 수 없는 제도와 분위기 속에서 더는 버틸 수 없었을 뿐이다.

그의 이야기는 단순히 개인적인 고충을 넘어, 지금 태국에서 장기 체류 중인 외국인들이 공통적으로 겪는 현실을 보여준다.

사랑했던 나라였기에, 마지막까지도 미움 없이 떠날 수밖에 없었던 그의 사연은, 여행자와 이주자의 삶이 얼마나 다른지를 조용히 들려주고 있다.

매년 새로 시작해야 하는 비자, 그리고 서류의 삶

매년 새로 시작해야 하는 비자, 그리고 서류의 삶

그는 태국에서 합법적으로 사업을 운영하며 세금을 납부해왔다.

태국에서 나고 자라는 아이들을 위해 교육에도 아낌없이 투자했고, 태국어를 스스로 익히며 문화와도 적극적으로 어울리려 노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마다 비자를 다시 신청해야 했고, 체류 조건은 점점 더 까다로워졌다.

한 번 체류 허가를 받았다고 끝나는 게 아니라, 매년 ‘나는 여전히 이곳에 머물 자격이 있다’는 것을 증명해야만 했다.특히 90일마다 이민국에 가서 체류 사실을 보고해야 하는 제도는 일상에 큰 부담이 되었다.

온라인 시스템이 자주 작동하지 않다 보니, 직접 사무실에 방문해야 할 때가 많았고, 이로 인해 하루를 통째로 비워야 하기도 했다. 만약 며칠 외출을 다녀온 경우, 다시 거주 신고를 해야 하는 번거로운 과정까지 이어졌다.

그는 “살고 있는 게 아니라, 체류 조건을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일하고 있는 기분”이었다고 전했다.

가족 모두가 ‘행정의 굴레’ 안에서 살아야 했다

가족 모두가 '행정의 굴레' 안에서 살아야 했다

이런 행정 절차는 본인뿐 아니라 가족에게도 영향을 끼쳤다. 그가 외출한 뒤 다시 입국하면, 태국인 아내가 그와 함께 이민국에 방문해 거주 신고를 도와야 했다. 집주인이 함께 와야 하는 경우도 있어, 본인의 회사뿐 아니라 배우자의 직장까지 영향을 받는 일이 잦았다.

결국 이민국을 방문하는 일은 단순한 행정 절차가 아니라, 가족의 일상을 중단해야 가능한 일이 되었다. “왜 이리 복잡해야 하지?”라는 질문을 수없이 던졌지만, 시스템은 늘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태국에서의 생활은 정착이 아니라 ‘연장전’ 같은 기분이 됐다고 그는 회상했다.

법과 규정은 늘 바뀌었고, 기준은 점점 불분명해졌다

법과 규정은 늘 바뀌었고, 기준은 점점 불분명해졌다

그를 가장 불안하게 만든 건 태국의 이민 정책이 언제든 바뀐다는 사실이었다. 어느 해에는 건강보험이 의무라고 하더니, 몇 개월 뒤에는 ‘아니다’는 공지가 내려왔다. 담당 공무원조차 규정에 대해 혼란스러워했고, 이는 외국인에게 더 큰 혼란과 불안을 안겼다.

그는 “내가 85세가 되었을 때 갑자기 법이 바뀐다면, 그땐 어디로 가야 할까?”라는 고민을 자주 했다고 한다. 지금은 조건을 맞춰 살 수 있어도, 먼 훗날 변화하는 규정을 따라가기 어려운 나이가 되면 모든 기반을 잃을 수 있다는 두려움. 그게 결국 그가 떠나야겠다고 마음먹게 된 가장 현실적인 이유였다.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달라지는 가격과 시선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달라지는 가격과 시선

태국의 국립공원이나 관광지에서는 외국인과 내국인의 입장료가 다르다. 그는 가족과 함께 여행을 갈 때마다, 자신만 10배의 입장료를 내야 했다. 아무리 거주증명서나 워크퍼밋을 보여줘도 “외국인이니까”라는 말 앞에서는 모든 게 무의미해졌다.

시장에서도 유사한 경험이 반복되었다. 아내와 함께 고기를 사러 갔을 때, 자신이 먼저 계산하려 하자 가격이 눈에 띄게 올랐다. 그는 결국 지역 시장 대신 대형 마트를 이용하게 되었는데, 그 이유는 간단했다.
“적어도 마트에서는 외국인이라고 값을 올리지 않으니까요.”

‘문제없어도 벌금을 요구받는’ 기이한 풍경

'문제없어도 벌금을 요구받는' 기이한 풍경

태국에서의 삶은 단순히 행정적 번거로움에 그치지 않았다. 그는 과거 한 차례, 아무 문제도 없는 서류를 갖고 있었음에도 이민국 공무원으로부터 벌금을 요구받은 적이 있었다. 공무원은 명확한 사유도 없이 “10,000바트를 내지 않으면 구금될 수 있다”는 말을 했고, 그는 울며 겨자 먹기로 돈을 건넸다.

공식적으로는 “이민청의 부패는 사라졌다”고 발표되었지만, 현장에 있는 사람들은 여전히 다른 현실을 경험하고 있다. 그는 이 경험 이후, “합법적으로 살아가는 데도 두려움이 있다는 사실이 가장 괴로웠다”고 털어놨다.

“태국을 원망하지 않습니다. 다만 떠날 수밖에 없었을 뿐이에요”

“태국을 원망하지 않습니다. 다만 떠날 수밖에 없었을 뿐이에요”

그럼에도 그는 태국을 원망하지 않았다. 이곳에서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키우며, 아름다운 기억들을 쌓아온 시간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태국을 사랑했고, 지금도 그 마음은 변함없다고 말한다.

다만, 시스템과 제도가 그의 삶을 끝까지 책임져주지 않는다는 점에서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남아서 싸우기보다는, 내가 나를 지키기 위해 떠나는 것이 맞다고 판단했습니다.” 그의 말은 아프지만 담담했다.

한국인에게 전하는 현실적인 조언

한국인에게 전하는 현실적인 조언

요즘 태국은 한국인들에게도 인기 있는 장기 체류지다. 치앙마이의 한 달 살기, 방콕의 워케이션, 푸껫의 은퇴 이주… 이 모든 꿈이 시작되기 전, 그는 꼭 한 마디를 전하고 싶었다고 한다.

“단기 여행과 삶은 다릅니다. 해외에서 살아간다는 건 단순한 낭만이 아닌, 현실 그 자체입니다. 행정, 문화, 제도의 벽까지도 함께 살아낼 수 있어야 진짜 정착이 가능하다는 걸 잊지 말아 주세요.”

여행자의 눈과 거주자의 시선은 다르다

여행자의 눈과 거주자의 시선은 다르다

태국은 여전히 많은 장점을 가진 나라다. 음식, 자연, 사람, 문화… 그 모든 것은 누구나 한 번쯤 동경할 만한 요소들이다. 하지만 그 안에 깊이 들어가 살아가게 되면, 보이지 않던 경계가 하나둘 드러난다.

그가 남긴 이 조용한 기록은, 누군가의 선택 앞에 중요한 기준이 되어줄 수 있을 것이다. 떠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남겨진 이들에게 질문을 던지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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